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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로그 2026

[답사로그]26.06.03.WED_서울암사동유적 답사

by 역사수달 2026. 7. 12.

한 달도 더 지나서 이제야 올리는 서울암사동유적 답사기.
아침 일찍 투표하고 시간이 아까워 답사도 다녀왔다.

서울암사동유적은 초등학교 때부터도 알고 있던 곳인데 드디어 방문했다.

원래 '암사동선사유적지'라고 많이 불렸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역사시대 유적도 발굴되면서 '서울암사동유적'이라고 크게 불리고 있다.

 


 

┃1. 가는 길

지하철을 타고 8호선 암사역사공원 역에 내린다.

2024년에 만들어진 역사라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깨끗한 느낌이다.

한쪽 벽면에는 암사역사공원에 걸맞게 토기 인테리어가 있다.

 

 

 

 

초등학교 이름도 서울선사초등학교.

암사역사공원 반대편으로는 아리수정수센터도 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임에도 너무나 시골같은 모습.

잘 가고 있는건지 당황스럽고 계속 풀만 잔뜩 나와서 황당했다.

알고보니 유휴공간이던 곳에 녹지공간을 조성해서 탄소도 흡수하고 산책로도 만들었다.

 

 


 

 

┃2. 움집터

얼마 안되는 길임에도 꽤 한참 걸어 드디어 서울암사동유적 도착!

성인 입장료는 500원이다.

 

 

 

 

사람이 정말 단 한 명도 안보였다.

날도 많이 흐렸고 주말이 아니라 평일 가운데 하루 있는 빨간날이라 방문객이 없었나보다.

 

 

 

 

서울암사동유적은 1925년 대홍수로 드러난 것이 시작인데,

1967년부터 발굴조사를 시작해 현재까지도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88년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갔더니 움집터가 나온다.

70년대 조사하여 발굴한 집터 위에 9개의 움집을 복원했다.

 

 

 

 

움집은 땅을 파고 벽체 없이 지붕을 얹은 형태의 집을 말한다.

흔히 학교에서 배울 때 신석기 시대와 많이 연결짓지만,

신석기 이후 청동기 시대까지도 지어졌던 형태가 움집이다.

 

 

 

 

유난히 큰 움집이 하나 있었는데 직접 안에 들어가볼 수 있는 체험혐 움집이었다.

안에 들어갔는데 귀신같은 선사시대 사람들 모형과

갑자기 켜진 안내음성에 사진만 급히 찍고 꽁무니 빠지게 도망나왔다...

 

 


 

 

┃3. 암사동 선사 유적 박물관

더 오른쪽 방향으로 나가본다.

나가는 길에 방치된 구조물들을 봤는데, 강동선사문화축제 때 사용했던 것 같다.

강동선사문화축제는 2025년 기준 30회를 맞이했을 정도로 오래된 축제이다.

결이 비슷한 축제로는 한성백제문화제가 있어서 저는 올해 둘 다 가보려고 한다.

 

 

 

 

자연스레 자라있는 나무들을 베지않고 그 위에 길을 낸 모습.

너무 보기 좋아서 걸어가다말고 찍어봤다.

 

 

 

 

코너를 도니 공원 중간 쯤에 박물관이 있다.

좌우로 굉장히 긴 건물이고, 전체적인 형태는 움집을 따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

 

 

 

 

실내 로비에서 맞이해주는 거대한 전시물.

선사시대 유물, 자연, 현재, 미래가 융합되어 기하학적인 결과물을 보여준다.

이후 가볼 동굴 '시간의 길'에서도 비슷한 구조의 여러 영상 전시물을 볼 예정이다.

 

 

 

 

서울암사동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최대 규모의 마을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수천년동안 모래에 묻혀 있다가 1925년 대홍수로 드러났다.

이곳은 남한 지역 빗살무늬 토기가 널리 퍼진 기원지이기도 한데,

암사동 빗살무늬 토기는 전 세계 빗살무늬 토기 중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역시 첫번째 챕터는 신석기 시대의 꽃, 빗살무늬 토기이다.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3대 문화가 '농경', '간석기', '토기'라고 하는데,

한반도에 처음 출현한 토기는 바닥이 평평했지만

기원전 4천년 경 한반도 중남부지방 토기는 대부분 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한 모양이 주였다고 한다.

 

 

 

 

빗살무늬 토기는 '빗살' 무늬가 그려져 있다.

토기에 그려진 다양한 무늬들을 유심히 보신 적이 없던 것 같다.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른 무늬, 몇천년 전 사람들의 미감을 엿본다.

 

 

 

 

 

약 1만년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마지막 빙하기 이후 따뜻한 시대를 '홀로세'라고 부르는데,

신석기 시대는 지질학적 연대로 홀로세에 시작해,

다양한 생태계가 조성되고 사람들이 모여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교과서로만 보던 탄화한 도토리와 갈판, 갈돌.

도토리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주 먹거리였다고 한다.

 

 

 

 

한쪽 켠에 준비된 숨겨진 전시물.

신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도 만날 수 있는 식물들이 압화되어 있다.

버드나무, 유채 등 다양한 식물들이 그 때에도 있었던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시대에도 만날 수 있는 곤충과 동물들.

커다란 동물들 사이에 있는 두더지가 귀여워 찍어봤다.

두더지, 멧돼지, 토끼, 노루 등이 있었던 신석기 시대이다.

 

 

 

 

박물관 중간 즘에는 1975년 발굴 조사 중 발굴된 집 자리를 보존한 구역이 있다.

보존 처리 과정은 전문가 자문회의 → 건식 세척 → 균열 부분 표면 정리

→ 형틀 접합 작업 → 표면 재현 작업 → 표면 경화처리로 이어진다.

 

 

 

 

사실 보존 처리를 거쳐서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아쉬웠다.

흙이 아니라 문구점에서 파는 점토로 모형을 만든 느낌?

그래도 화덕 자리를 유심히 볼 수 있었서 좋았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사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식량확보를 위해 사냥과 채집이 중요했다.

돌도끼, 돌끌, 찍개 등 각종 석재 유물들.

 

 

 

 

발굴 당시 기록이 남은 유물이라 찍어봤다.

 

 

 

 

신석기 시대에 쓰인 대표적인 광물로는 흑요석과 옥이 있다.

흑요석은 용암이 급속히 냉각돼 형성된 광물로 백두산과 일본 등이 원산지였다.

단단하고 날카로워 주로 화살촉 재료로 쓰였다.

 

옥은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돼 청동기 시대에 널리 쓰였는데,

단단하고 아름다워 주로 귀한 장신구나 의례용품을 만드는데 쓰였다.

 

 

 

 

한반도 신석기 토기문화는 5단계를 거쳐 발전한 것으로 본다.

위 사진은 한반도 신석기 시대 토기의 지역적 양상이고,

아래는 토기문화 5단계가 설명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1)초창기(B.C. 8,000~6,000년)
- 제주도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바닥이 평평하고 문양이 없는 '고산리식 토기'로 대표.

2)조기(B.C. 6,000~4,500년)
- 주로 동북과 남부 지방의 해안가와 섬 유적에서 출토된 점토 띠를 표면에 붙인 '덧무늬 토기'로 대표.

3)전기(B.C. 4,500~3,600년)
- 중서부 지방에서 출토된 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한 포탄형의 '빗살무늬 토기'로 대표.

4)중기(B.C. 3,600~2,500년)
- 중서부 지방의 빗살무늬 토기가 동부와 남부로 확산되고 지역별로 다양한 토기 문화가 발전하는 시기.
- 토기 표면에 새긴 문양의 선이 얇은 '세침선문 토기'와 선이 굵고 깊은 '태선침선문 토기'가 혼합되어 출현.

5)후기(B.C. 2,500~1,500년)
- 토기의 문양이 점차 사라지고 입술 부위에 한 겹을 덧댄 '겹입술 토기'와 '구멍무늬 토기'등이 출현.

 

 

 

 

여러 토기들 중 이름이 특이한 겹아가리 토기와 번개무늬 토기이다.

겹아가리 토기는 입구가 두껍게 되어 있어 이름이 붙여졌나보다.

번개무늬 토기는 함경북도 경성 원수대에서 발견됐다.

 

 

 

 

문양이 유독 마음에 들었던 빗살무늬 토기이다.

 

 

 

 

세계 신석기 문화의 토기이다.

모양과 색깔, 문양의 형태가 조금 다르다.

특히 우측에 '채색 세 입 항아리'는 중국 토기인데 매우 특이하다.

연대가 나와있으면 좋겠는데 없어서 아쉬웠다.

 

 

 

 

신석기 체험실로 가는 길에 선사유적 발굴의 역사를 설명해놨다.

1925년 대홍수로 존재가 드러났고 경성대학 소속 일본인들에 의해 조사가 이뤄졌으나

상세한 발굴 조사 없이 마무리되었다.

1967년 장충중·고등학교에서 야구장을 만들기 위해 암사동 일대에서 작업하던 중

빗살무늬 토기편과 돌무지 등이 발견되며 경희대에 의해 제대로 된 첫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이후 한국고고학 협회, 서울대 사범대 등에 의해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1970년대 본격적인 학술 조사의 시작.
발굴 사진들, 움집 터로 보인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주도의 심도있는 조사와 현재까지의 노력으로 이어진다.

 

 

 

 

신석기 체험실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조금 보인다.

주로 아이들을 타겟으로 한 활동들이라 대충 눈으로 훑고 갔다.

로비 전시물과 같은 그림이 영상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터치하면 파동이 생긴다.

 

 

 

 

움집 모형 만들기와 음식 모으기(?)이다.

 

 

 

 

토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단순하다.

 

 

 

 

박물관이니 만큼 한 쪽에 기념품 숍이 있는데 너무 협소하다.

쭉 둘러봤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그냥 나왔다.

 

 


 

 

┃4. 시간의 길과 야외 체험장

나와서 다시 오른쪽으로 가보자 '시간의 길'이라는 동굴이 나왔다.

시간여행을 하듯 타임머신을 타고 통과하는 통로라고 한다.

 

 

 

 

유물, 사진, 도형을 이용해 만든 기하학적인 특유의 꼴라쥬 작품인데,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계속 똑같은 작품만 보여주니 조금 지루했다.

박물관 로비 정도로 충분한 것 같고 예술작품을 설치한다면 좀 더 다양했으면 좋았겠다.

시간의 길 자체도 뜬근없이 설치된 느낌이라 매우 아쉬웠다.

 

 

 

 

시간의 길을 나와서는 야외 체험 및 전시장이 있다.

어로 체험, 발굴 체험 등 각종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은

홈페이지에서 운영 내용 확인 후 신청해야 이용 가능하다.

 

 

 

 

움집 뼈대와 신석기 시대 생활모습 모형도 있다.

멧돼지 구이가 참 맛있어 보인다.

 

 


 

 

┃5. 유구보호각

마지막 코스는 입구 근처로 다시 돌아와 좌측에 있는 유구 보호각이다.

2016~2017년, 학술발굴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 주거지와 삼국시대 주거지가 나왔다.

교육용으로 일부에 보호각을 덮어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좌측은 삼국시대, 우측은 신석기 시대 주거지 유적이다.

 

 

 

 

유규 보호각을 마지막으로 관람을 끝내고 나왔다.

신석기 시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집으로 가는 길도 왠지 도심같지 않은 길들을 지나, 역으로 향했다.